통치 체제의 정비
<중앙 정치 체제와 지방 행정 조직>
조선의 중앙 정치 체제는 성종 때 편찬 완료된 경국대전에 명시되어 법제화되었다. 관리는 양반으로 문반과 무반으로 구성되었고, 30등급(18품 30계)으로 나뉘었다. 조선 시대의 관직은 국정 총괄의 역할을 하는 의정부와 그 아래 국왕의 명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인 6조로 구성된 경관직(중앙 관직)과 외관직(지방 관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6조 아래에는 여러 관청이 업무를 나누어 맡아 행정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으며, 의정부와 6조의 고관들이 중요 정책 회의에 참여하거나 또는 국왕과 함께 경연에 참석하여 정책에 대한 논의를 진행함으로써 각 관서 사이의 업무들을 조정하고 통일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으로 불리는 3사는 고려시대와 다르게 관리들의 비리를 감찰하고, 정사를 비판하며, 문필 활동을 하는 등 조선의 언론 기능을 담당하였다. 3사의 언론 기능은 고관뿐만 아니라 왕조차도 함부로 막을 수 없었으며, 이를 보장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규정들이 관행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3사의 기능 강화는 결국 조선 정치 사회에서 권력을 독점하거나 부정을 방지했으며 이는 조선 시대 정치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3사의 언관들은 청요직이라 불렸는데 벼슬 품계는 높지 않았지만, 학문이나 덕망이 높은 사람들이 주로 임명되었다. 언관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승이나 판서와 같은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밖에, 왕의 명령에 따라 국가의 안위에 위험을 준 큰 죄인들을 다스리는 의금부, 왕명 출납 기능을 담당하는 승정원, 수도 서울의 행정 및 치안을 담당하는 한성부, 역사서를 편찬하고 보관하는 역할을 하는 춘추관 그리고 조선 시대 최고의 교육 기관인 성균관 등이 있었다.
조선의 지역 행정 체계를 보면, 전국을 8도로 나누었고, 고을의 크기에 따라 지방관의 등급을 조정하고, 작은 군현들을 통합하여 전국에 약 330여 개의 군현을 두었다. 향, 부곡, 소 등 고려시대에는 특수 행정 구역으로 분리되었던 곳들도 모두 일반 군현으로 승격시키거나 기존 군현에 포함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주민에 대한 왕권 행사, 즉 지방에 대한 국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모든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였다. 수령이란 지방 사회에서 왕의 대리인으로, 그 지역의 행정, 사법, 군사권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국가에서 파견한 수령에 대한 권리를 대폭 강화했지만, 지방에서 유지로 행세했던 향리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수령의 행정 실무를 보좌하는 세습적인 아전으로 격하시켰다.
한편, 각 지방 군현에 파견한 수령을 관리, 지휘 및 감독하고 광역 지방 백성의 생활상을 살피기 위해 전국 8도에 관찰사를 파견했고, 수시로 암행어사를 파견해 지방 사회에 대한 국가의 지배력을 꾸준히 강화하였다. 관찰사는 지방 사회에서 왕의 역할을 대신하며 감찰권, 행정권, 사법권, 군사권을 가진 아주 중요한 직책이었다.
<군역 제도와 군사 조직>
조선은 건국 초창기부터 군역 제도를 정비하고 군사 제도를 강화했다. 강력한 왕권을 꿈꿨던 태종은 즉위 후 모든 사병을 혁파했고, 16세부터 60세까지의 모든 양인 남성들에게 군역의 의무를 부과했다. 이로써 모든 양인은 정군이라고 불리는 현역 군인과 정군의 군사적인 비용을 부담하는 보인(봉족)으로 편성되었다. 예외도 있었다. 현직 관료와 학생 그리고 향리 등은 군역의 의무를 면제받았으나 종친과 외척, 공신과 고급 관료의 자제들은 고급 특수군에 편입되어 군역을 대신하였다.
정군은 서울에서 근무하거나 국경의 요충지에 주로 배치되었다. 이들은 일정 기간 동안 교대로 복무하였으며, 복무 기간에 따른 품계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군사 조직은 궁궐과 도성을 수비하는 중앙군은 5위로 구성되었으며, 그 지휘 책임은 문반 관료가 맡았다. 중앙군은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정군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간단한 시험을 거쳐 선발되는 직업 군인인 갑사나 왕족, 고위층의 자제들로 구성된 특수병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갑사는 근무 기간에 따라 품계를 받고 녹봉도 받았다.
지방군은 육군과 수군으로 나누어지는데, 건국 초에는 국방상 요충지인 영 또는 진에 소속되어 복무하였다. 하지만 세조 이후에는 진관 체제를 실시하게 되어 요충지인 고을에 성을 쌓고 방어 체제를 강화하였다. 여기서 진관 체제란 지역 단위 중심의 방어 체제로, 각 도 안의 1~2개의 병영을 두고 병사가 관할 지역의 군대를 장악하며, 각 병영 아래에 몇 개의 거진을 두고 거진의 장인 수령이 그 지역의 군대를 통솔하는 체제였다. 바다와 인접한 각 도에는 수군이 설치되었다. 수군은 육군과 비교하면 복무 강도가 힘들고 위험하여 일반 백성들은 수군에 들어가는 것을 기피했다. 이 외에도 서리, 잡학인, 신량역천인, 노비 등이 소속되어 유사시를 대비하던 예비군의 일종인 잡색군이 조선 초까지 존속하였다.
이렇게 정비된 군사 조직과 더불어 교통 및 통신 체계 역시 정비되었다. 군사 위급 상황을 알리기 위한 봉수제가 마련되었고, 물자 수송 및 통신을 위한 역참도 만들어져 국방 체계뿐만 아니라 전국 8도에 중앙 집권적인 행정이 용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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