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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근대 태동기의 문화 - 문화의 새 경향(1)

by 밍밍S2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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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새 경향

<서민 문화의 발달>

  조선 후기에는 상공업이 발달하고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면서 이를 배경으로 한 문화면에서 새로운 기운이 대두되었다. 서당 교육이 보급되고, 서민의 경제적·신분적 지위가 향상됨에 따라 서민 문화가 나타났다. 기존 양반을 중심으로 유교적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던 문예 활동에 중인과 서민이 참여하면서 큰 변화가 생겨났다. 특히, 역관이나 서리 등의 중인층과 상공업 계층 그리고 부농층의 문예 활동이 활발해졌으며, 상민이나 광대의 활동도 활기는 띠었다.

 

  조선 전기의 문예는 교양이나 심성 수련을 목표로 하여 정적이고 소극적이었던 반면, 조선 후기의 문예는 적나라한 감정 표현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경향은 자연스럽게 양반의 위선적인 모습을 비판하는 동시에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풍자하고 고발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글이 널리 사용되면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 소설의 보급은 그 영향력이 대단하였다. 한글 소설의 주인공은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물인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 현실 세계가 배경이 되었다. 춤과 노래 그리고 사설로 서민의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한 판소리와 탈춤은 서민 문화를 확대하는 데 크게 이바지를 하였다. 회화에서는 그 저변이 확대되어 풍속화와 민화가 유행하였다. 음악과 무용 역시 감정을 대담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판소리와 탈놀이>

  조선 후기 문화의 새 경향 중 가장 두드러지고 인기 있는 분야는 판소리와 탈춤이었다. 판소리는 광대가 한 편의 이야기를 노래에 해당하는 창과 이야기에 해당하는 아니리, 그리고 몸놀림인 발림으로 연출하는 장르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창과 사설로 엮어가기 때문에 판소리는 감정 표현이 직접적이고 솔직했다. 그뿐만 아니라, 공연 분위기에 따라 광대가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가감할 수 있었고, 관중이 추임새를 넣음으로써 함께 어울릴 수 있었다. 그래서 판소리는 서민을 포함한 넓은 계층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었고, 이 시기 서민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판소리 작품으로는 열두 마당이 있었지만, 현재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등 다섯 마당만 전해지고 있다. 신재효는 19세기 후반에 이러한 판소리 사설을 창작, 정리하였다.

 

  탈놀이와 산대놀이도 조선 후기 사회 변화를 겪으면서 성행하였다. 탈놀이는 향촌 마을에서 마을굿의 일부로 공연되어 인기를 얻었고, 산대놀이는 산대라는 무대에서 공연되던 가면극이 민중 오락으로 정착되면서 도시의 상인이나 중간층의 지원을 받고 성장하였다. 

 

  이러한 가면극에서는 지배층과 그들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려는 승려의 부정부패와 위선을 풍자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하층 서민인 말뚝이와 취발이를 등장시켜 양반의 허구를 폭로하고 욕보이기까지 하였다.

 

  가면극과 판소리는 상품 유통 경제의 활성화와 동반 성장하여 당시 사회 모순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서민 자신들의 존재를 자각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한글 소설과 사설시조>

  조선 후기 사회 변동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은 바로 문학이었다. 그중에서도 한글 소설과 사설시조가 대표적이었는데, 이는 문학의 영역이 서민층에까지 확대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한글 소설인 허균의 홍길동전은 서얼에 대한 차별 철폐, 탐관오리 응징을 통한 이상 사회 건설 묘사 등을 통해 당시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대표적인 한글 소설로 손꼽히는 춘향전도 신분 차별의 비합리성을 보여주었다. 이 밖에도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남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못된 용왕을 골려주는 토끼,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으로 왕비가 된 심청, 불합리한 가족 관계에서 희생된 장화·홍련 등의 이야기는 서민이 자신과 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한편, 시조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대두되었다. 선비들의 절의와 자연관을 담고 있던 이전의 시조와는 달리, 조선 후기의 시조에는 서민의 솔직한 감정이 나타났다.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설시조 형식을 통하여 남녀 간의 사랑 또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였다.

 

  양반층이 중심이었던 한문학도 실학의 유행과 함께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예리하게 비판하였다. 정약용은 삼정의 문란을 폭로하는 한시를 남겼고, 박지원은 양반전, 호질, 민옹전 등의 한문 소설을 통해 양반 사회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실용적인 태도를 강조하였다. 특히 박지원은 현실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문체로 혁신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중인층과 서민층의 문예 창작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동호인들이 모여 시사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중인층의 시인들이 서울 주변 지역에서 시사를 조직하여, 문학 활동을 전개하면서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였고, 역대 시인의 시를 모아 시집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김삿갓, 정수동 같은 풍자 시인은 아예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 민중과 어우러진 채 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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