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의 발달
<상공업 중심의 개혁론>
18세기 후반에는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 진흥과 기술 혁신을 주장하는 실학자가 나타났다. 이들은 청나라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부국강병과 이용후생에 힘쓰자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을 이용후생 학파 또는 북학파라고 부른다. 북학파 실학사상의 대두는 병자호란 이후 고착화되었던 화이론적 명분론에서 탈피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공업 중심의 개혁론의 선구자는 18세기 전반의 유수원이었다. 그는 우서를 편찬하여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의 혁신을 강조하였고,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하였다. 유수원은 농업에서 토지 제도의 개혁보다 농업의 상업적 경영과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력 향상을 주장하였다.
북학파의 실학 사상은 18세기 후반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에 의하여 가장 크게 발전하였다. 홍대용은 청에 왕래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기술 혁신과 문벌제도 철폐, 그리고 성리학의 극복이 부국강병의 근본이라 강조하였으며,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비판하였다.
박지원은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저술하였으며, 상공업 진흥을 강조하면서 수레와 선박의 이용, 화폐 유통의 필요성 등을 주장하였고, 양반 문벌 제도의 비생산성을 비판하였다. 농업에서도 영농 방법의 혁신, 상업적 농업의 장려 그리고 수리 시설의 확충 등을 통하여 농업 생산력을 향상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박지원의 실학 사상은 그의 제자였던 박제가에 의하여 더욱 심화·확장되었다. 박제가는 청에 다녀온 후 북학의를 저술하여 청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상공업의 발달, 청과의 통상 강화, 수레와 선박의 이용 등도 주장하였다. 또,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우물물에 비유하여 생산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절약보다 소비를 권장해야 함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18세기를 전후로 하여 크게 융성하였던 실학사상은 실증적, 민족적, 근대 지향적인 성격을 지닌 학문이었다. 특히 북학파의 실학사상은 19세기 후반의 개화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 박제가의 소비관
비유하건대, 재물은 대체로 샘과 같다. 퍼내면 차고, 버려두면 말라 버린다. 그러므로 비단옷을 입지 않아서 나라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게 되면 여공이 쇠퇴하고, 쭈그러진 그릇을 싫어하지 않고 기교를 숭상하지 않아서 공장이 도야하는 일이 없게 되면 기예가 망하게 되며, 농사가 황폐해져서 그 법을 잃게 되므로, 사농공상의 사민이 모두 곤궁하여 서로 구제할 수 없게 된다.
<북학의>
<국학 연구의 확대>
실학이 발달하면서 민족의 전통과 현실에 대한 관심도 깊어져 우리의 역사, 지리, 국어 등을 연구하는 국학도 발달하였다.
이익은 실증적이면서 비판적인 역사 서술을 제시하고,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역사를 체계화할 것을 주장하였고, 민족에 대한 주체적 자각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였다. 그의 제자였던 안정복은 동사강목을 편찬하여 이익의 역사의식을 계승하였다. 동사강목은 고조선에서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것으로, 우리 역사의 독자적 정통론을 세웠고 이를 체계화하였다.
이긍익은 조선 시대의 정치·문화를 정리한 연려실기술을 저술하였다. 한치윤은 500여 종의 중국 및 일본 자료를 참고하여 해동역사를 편찬하여 민족사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종휘는 고구려 역사 연구 기록인 동사를, 유득공은 발해사 연구 기록인 발해고를 저술하였다. 이들은 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만주 지방까지 확대함으로써 한반도 중심의 협소한 사관을 극복하려 노력하였다.
한편, 김정희는 금석과안록을 편찬하여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혔다.
이 시기에는 국토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어 우수한 지리서들이 다수 편찬되었으며, 정밀한 지도도 제작되었다. 한백겸의 동국지리지,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등이 대표적인 역사 지리서이며, 인문 지리지로서는 이중환의 택리지가 대표적이다.
중국에서 서양식 지도가 전파됨에 따라 정밀하고 과학적인 지도 역시 많이 제작되었다.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최초로 100리 척을 사용하여 정확하고 과학적인 지도 제작에 공헌하였고, 김정호는 산맥, 하천, 포구, 도로망의 표지가 정밀하고, 거리를 알 수 있도록 10리마다 눈금을 표시한 목판 인쇄 지도인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언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신경준의 훈민정음운해, 유희의 언문지 등이 출판되었으며, 우리나라의 방언과 해외 언어를 정리한 이의봉의 고금석림도 편찬되었다.
실학의 발전과 문화 인식 폭의 확대로 인해 조선 후기에는 백과사전류의 저서들 역시 다수 편찬되었다. 백과사전류의 효시가 된 책은 이수광의 지봉유설이며, 그 뒤를 이어 18~19세기에는 이익의 성호사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이 출판되었다.
영·정조 때에는 국가사업으로 동국문헌비고가 편찬되었는데, 이 책은 우리나라의 역대 문물을 정리한 한국학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 안정복의 삼국 인식
삼국사에서 신라를 으뜸으로 한 것은 신라가 가장 먼저 건국되었고, 뒤에 고구려와 백제를 통합하였으며, 고려는 신라를 계승하였으므로 편찬한 것이 모두 신라에 남은 문적을 근거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편찬한 내용이 신라에 대하여는 약간 자세히 갖추어져 있고, 백제에 대하여는 겨우 세대만을 기록했을 뿐 없는 것이 많다. ······
고구려의 강대하고 현저함은 백제에 비할 바가 아니며, 신라가 자처한 땅의 일부는 남쪽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김 씨(김부식)는 신라사에 쓰인 고구려 땅을 근거로 했을 뿐이다.
<동사강목>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대 태동기의 문화 - 문화의 새 경향(1) (0) | 2023.01.29 |
---|---|
근대 태동기의 문화 - 과학 기술의 발달 (0) | 2023.01.29 |
근대 태동기의 문화 - 성리학의 변화, 실학의 발달(1) (0) | 2023.01.29 |
근대 태동기의 사회 - 사회 변혁의 움직임(2) (0) | 2023.01.28 |
근대 태동기의 사회 - 향촌 질서의 변화, 사회 변혁의 움직임(1) (0) | 2023.01.28 |
댓글